이번에 범야권이 189석을 갖게 되었는데, 지역구만 176석 내외를 예상했던 제 입장에서는 좀 아쉬운 결과였지만, 사실 190:110 구도가 200석 이상 못지 않게 좋은 결과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무엇보다, 110석은 현재 대통령과 국힘 모든 주자들에게 미련을 갖게 하는 숫자입니다.

100석 이하로 갔다면 윤석열은 단번에 끝장났겠지만, 동시에 보수 진영은 자연스럽게 현 정권을 뒤로 물리고 탄핵/개헌 이전 보수 진영이 빠르게 대처하여 새로운 대권 주자들을 빠르게 올리고 결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에게도 선택지가 없었겠죠. 하지만, 110석이라는 애매한 숫자, 게다가 비윤과 친윤이 함께 섞여 만들어진 저 숫자로 인해 대권 주자들(홍준표, 오세훈 ,안철수 등)은 윤석열과 거리를 두려 하겠지만, 동시에 윤석열은 자신이 계속 주도권을 쥐고 말 잘 듣는 사람을 다음 대선 후보로 올리려는 욕망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비윤과 친윤의 충돌 양상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죠.

둘째, 다음 대선에 미칠 영향을 봐도 좋습니다. 저는 항상 많은 국민들은 기계적 견제와 균형 심리 (물론 주로 민주진보 진영에 적용하긴 하지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개헌, 탄핵을 할 수 있는 200석을 민주진보 진영이 가져갔다면 다음 대통령까지 줘서는 안된다는 견제와 결집 현상이 강하게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총선인데요. 당시 정권을 넘기고 총선 마저 야권 110석으로 쪼그라들자, 국힘은 정치신인이자 보수진영에게는 원수였던 윤석열도 대선후보로 끌어들였고, 안철수와도 합치는 등 단일대오로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의석이더라도 오히려 여당이 보수당인 상황에서는 단일대오로 뭉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국힘 108석은 언제든지 탄핵으로 접어들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비윤 의원들도 상당수 있고, 서로 대권 꿈을 꾸는 사람들도 많은 만큼 윤석열 악재가 터질 경우 자중지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가져갈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비윤 및 개혁신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건 아쉬운 상황이지만, 지난 탄핵 사례에서 보듯 '개혁적 보수'까지 끌어들여야 사회갈등을 최소화하고 원활한 탄핵이 가능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번과 비슷한 190:110 구도이지만 민주진보 진영의 구성원들이 상당수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3정당 포지션은 정의당에서 조국혁신당으로, 소수정당 국회의원은 조정훈, 양정숙에서 한창민 및 진보당으로 바뀌었고, 민주당 내에서도 개혁에 미온적인 중진의원들 상당수를 갈아치웠습니다. 즉, 국회의원 수는 비슷하더라도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고, 민주당은 앞으로 야당으로서 단일대오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200석 이상을 가져왔을 때의 혁명적인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아쉽지만, 190:110 구도로도 윤석열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기반은 충분히 되었고, 오히려 어떻게 정치적 묘를 발휘하냐에 따라 200석 이상일 때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