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유해 몰래 묻었던 자리마저, “테러리스트 묘비 철거하라” 소송전
지난 27일 월진회 일본 지부장인 박현택씨가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노다산에서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묘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가 묻힌 이곳에서 일본은 한때 일본군 전몰자 기념행사에서 나온 쓰레기를 태우기도 했어요.”
지난 27일 월진회 일본 지부장인 박현택씨는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노다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묘비) 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일제가 윤 의사를 총살한 뒤 산길의 좁은 통행로 옆 평평한 땅 아래 유해를 묻는 ‘평장’을 했다”며 “일본군이 ‘오사카에서 사형시켰다’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윤 의사가 묻힌 곳인 줄 모르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 자리를 밟고 지나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좁은 오솔길 한쪽에 두 평(6.6㎡)이 채 안 돼 보이는 크기의 암장지적비에는 ‘사내가 집을 나서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의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글귀가 윤 의사 친필로 새겨져 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들은 비석 앞에 초를 밝히고 헌화했다.
윤 의사 암장지 위로는 1930년대 상하이사변 당시 일본 전몰자들을 위한 육군묘지 ‘이시카와현 전몰자 묘지’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세워져 있다. 일제는 윤 의사를 총살한 뒤, 자국이 벌인 침략전쟁 과정에 숨진 전몰자 묘지 아래 햇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곳에 윤 의사 유해를 비밀리에 암장했다. 이어 그 자리를 오랜 기간 쓰레기 소각장처럼 써왔던 것이다.
지난 27일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노다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에 방문객들이 초를 켜고 헌화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본군 핵심 간부 등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상하이 파견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데이지 등이 즉사하고,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 우에다 겐키지 제9사단장(중장), 시게미쓰 마모루 주중 일본 공사 등이 중상을 입었다.
윤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날은 당시 일왕의 생일이자 중국을 상대로 한 전승 축하기념식이 열리던 날이었다. 현장은 일본군 1만여명을 비롯해 3만명의 일본인이 자리를 가득 메운 상태였다. 윤 의사는 사흘 전 한인애국단원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한다”고 선언하고 의거를 감행했다. 한인애국단장 백범 김구는 “이승에서 못다한 우리의 우정을 저승에서 광복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마음껏 누리자”며 그를 떠나 보냈다.
의거 뒤 곧바로 체포된 윤 의사에게 일본 검찰관은 “이런다고 조선이 독립되는 것이 아니며, 무모하고 허황된 짓”이라고 말했다. 윤 의사는 “이 일로 한국이 당장 독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한국의 독립은 제국주의가 이 땅에서 사라질 때 세계의 피압박 민족의 해방과 함께 이뤄질 것”이라면서 “그러나 나는 그것을 조금 앞당기기 위해 의거를 거행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윤 의사는 의거 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5월25일 상하이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11월20일에는 사형 집행을 위해 일본 오사카 육군 위수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2월18일 가나자와시의 일본 육군 9사단 법무부로 이송된 지 하루만인 12월19일 오전 7시40분, 암장지로부터 2㎞가량 떨어진 미쓰코지산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돼 순국했다. 불과 24살 6개월 나이였다.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노다산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 자리에 ‘사내가 집을 나서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의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글귀가 윤 의사 친필로 새겨져 있다. 일제는 그의 유해조차 편히 쉬게 두지 않았다. 윤 의사의 유해는 형법 절차가 무시된 채 비밀리에 묻혔고, 아무 표시도 없이 평평한 땅에 암장해 위치조차 알 수 없게 했다. 당시 일본군은 신문에 “오사카에서 형이 집행됐고, 유해는 화장했다”고 알렸지만 거짓말이었다. 윤 의사의 삶을 기록한 야마구치 다카시의 책 ‘침략과 저항, 상하이사변과 윤봉길’을 보면, “원래 형을 집행하기로 했던 오사카 에이쥬 형무소에 한 달 동안 구금됐는데도 형의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오사카에 재일조선인이 많이 살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고 적고 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3월 재일동포 200여명이 끝내 암장지를 찾아내 현장을 발굴했고, 같은 해 7월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비밀리에 암장된 장소가 확인된 데는 일본 육군묘지 관리인이 알려줬다는 설을 비롯해 형무소 간수 혹은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일본인 기자가 몰래 전달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윤 의사 유해가 묻혔던 자리에 암장지적비가 세워진 것은 순국 60주년이던 1992년이다. 박현택씨의 삼촌인 박인조씨와 고 윤규상 월진회 명예회장, 재일동포 신인홍씨와 뜻있는 일본인들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지난 2006년에는 일본 우익들이 암장지적비의 존재를 문제 삼아, 이 땅의 소유권을 가진 가나자와시를 상대로 ‘감사청구’를 하면서 한때 철거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뒤, 월진회 일본지부와 일본 사민당 의원들이 가나자와 시장의 허락을 얻어 암장지를 영구임대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한·일 시민들이 지난 27일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노다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최근 윤 의사의 암장지적비는 일본 극우 인사들이 다시 철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월 우익단체 한 인사는 가나자와시를 상대로 소송을 내어 “한국인 테러리스트 윤봉길의 위령비를 가나자와시의 공유지인 묘지에 건립하는 것이 가나자와시에게 필수적이지 않으며 정당한 이유도 없다”며 2008년 월진회 일본지부에 윤 의사 암장지 영구임대를 허용한 계약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소송 준비서면에서는 “양심적인 일본인에게 (그는) 테러리스트이고, 법률이나 사회 통념상에서도 윤봉길은 범죄자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본 재판을 제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오는 25일 오후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한·일 시민들이 지난 27일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노다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에 1946년 3월6일 윤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을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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