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가 외계행성의 지배자가된 세계관
브금
이름하야 '햄스터 천국(Hamster's Paradise)'.
풀, 곤충, 새우, 미생물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육상척추동물이 작은 햄스터들뿐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그 햄스터들만의 천국에서 천만 년이 흘렀다면, 그 세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아주 먼 미래, 우주에 진출한 인류는 새로운 행성을 테라포밍하려고 했음.
“하나는 태양처럼, 하나는 더 밝은 귤처럼”
이중성계의 주별을 공전하는 HP-02017은 지구와 유사한 행성이다. HP 알파 항성은 지구 태양과 비슷한 질량과 온도를 가졌으며, HP 베타와 함께 은하계를 공전한다. HP-02017의 하늘에는 HP 알파가 태양처럼, 베타가 빛나는 귤 반점처럼 보인다. 행성은 지구에 있는 것과 비슷한 두 개의 달을 가지고 있었고, 대륙과 바다도 있다.
후보로 꼽힌 행성은 여러모로 지구랑 환경이 비슷했는데, 항성과 위성이 각각 두개씩 있는게 차이라면 차이임.
(항성 하나는 지구의 태양과 비슷하고, 하나는 좀 더 멀리있어서 작지만 더 밝게 귤처럼 빛남. 이때문에 '베타 황혼'이라는 독특한 자연현상이 벌어짐. 위성 두개는 둘 다 달과 비슷하게 생김)
해조류와 광합성 미생물이 행성의 바다에 투입되면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고, 기온을 높여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으로 변할 것이다. 이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생명의 씨뿌리기가 시작되었다.
대충 미생물도 투하하고, 풀도 심고, 미역하고 새우도 바다에 넣어놓고... 그렇게 테라포밍을 거의 끝마치고 이제 막 동물들을 풀으려 하는 단계에서,
그들은 행성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작고 고립된 섬에 놓여졌다. 그곳의 번식 개체군은 인류의 개척을 시험하는 영광스런 첫번째 시험체들이었다. 최초의 개척자들 뒤에는 더 다양하고 거대한 짐승들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않았다.
그 따 시험 케이스로 귀여운 햄스터들만 내려보냈는데,
"그분들께선 예비하신 모든 계획을 남겨두시고는 영원히 다시 오지 않으셨다."
하필이면 딱 햄스터들만 떨궈진 그 시점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테라포밍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고 인류는 자취를 완전히 감춰버림.
그리고 다시는 이 행성에 찾아오지 않음.
몇백만년, 아니 몇천만년, 아니 수억년 동안. (사실상 사라져버림)
그리고 이제, 햄스터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설치세 초기: 1-500만 년 후.
The Early Rodentocene: 1-5 million years post-establishment
갑자기 세계를 상속받은 햄스터들은 급체하고 말았다. 포식자도, 먹이경쟁도, 생태압력도 없는 이 낙원에서 이 개발도상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멸종할 뻔한 것이다.
풍부한 식물과 씨앗, 곤충을 먹으며, 개체수는 무한정 증가했고, 집단 아사의 위기를 맞았다. 개체수 폭발과 집단 아사의 반복 속에서 상당수 식물종과 무척추동물 종이 멸종하고 생태계가 크게 변화했다. 그러나 1만 년이 흐른 뒤, 햄스터들은 균형을 찾았고, 침입종은 결국 생태계 퍼즐 조각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햄스터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을 되풀이하며, 그 사이의 개체수 병목 현상은 수없이 많은 고립된 집단과 그로 인한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를 불러일으켰다. 한 마디로, 근친교배와 돌연변이가 이들을 여러 모습으로 갈라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변이들은 햄스터의 생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경했고, 일부는 특정 개체군의 후손들이 번식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곳곳에서 독특한 아종들이 탄생했다. 향후 500만 년 동안 각지에서 이러한 진화적 혼란과 안정의 반복이 벌어질 것이다.
더 큰 귀와 밝은 색을 가진 햄스터는 더 효율적으로 열을 배출할 수 있었기에 다른 햄스터들이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건조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팔다리가 길고 꼬리로 균형을 잡는 햄스터는 나무를 더 잘 오를 수 있었고,
덩치 큰 햄스터는 경쟁자들로부터 더 쉽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으며 더 많은 것들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다른 햄스터들을 잡아먹을 수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유전자의 호환성은 점차 낮아졌다. 서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햄스터들끼리 짝짓기하는 것이 선호됐고, 점차 생태 장벽에 의해 분리된 그들은 완전히 별개의 종들로 분화해나간다.
서로 경쟁이 줄어든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하며, 다양한 종들은 서로 멀어지게 되었다. 행성의 다양한 생태계에는 다양한 식량원이 있었고, 각 종은 각 식량원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 특화되었다.
각 종은 그들이 놓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원래 지구의 다른 설치류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모습으로 변했다. 수렴진화한 것이다.
마멋과 겨울잠쥐처럼 씨앗을 먹는 자들은 지하에 음식을 저장했고,
견과류를 먹는 나무 거주자들은 다람쥐같은 모습으로,
나무 아래 숲 바닥에서 풀을 뜯는 자들은 아구티나 마라 처럼,
대초원을 뛰노는 자들은 캥거루쥐나 뛰는쥐 처럼 변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설치류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생태지위를 손에 넣었다.
벌레를 전문적으로 먹는 자들은 더 긴 주둥이와 날카로운 이빨을 발달시켜, 땃쥐(이름과 달리 설치류가 아니다), 두더지, 고슴도치의 니치를 차지했고,
특히 더 공격적이며 육식을 즐기는 자들은 다른 햄스터들을 주식으로 삼았는데, 페럿, 족제비, 메뚜기쥐의 역할을 자처했다.
(담편에 계속...?)
* 추신: 본 게시물 작성자는 'Hamster's Paradise' 원작자에게 위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뒤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해도 된다는 허락을 따로 받았습니다. (원작링크)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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